1.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두 번이나 피폭 당하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데요. 이걸 억수로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 나쁘다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인공은 일본인 쓰토무 야마구치씨입니다. 당시 29세였던 청년 야마구치씨는 미쓰비시 중공업 기술자였어요.
1945년 8월 6일 출장으로 히로시마에 머물던 그는 첫 번째 피폭을 당합니다. 폭심지에서 3km 떨어져 있던 그는, 원자폭탄(리틀보이)가 투하되자 길 옆 하수구 도랑으로 몸을 던졌어요. 번쩍이는 섬광과 이어지는 원자폭탄 폭풍에 수십 미터를 날아갔지만 감자 포대 더미 위에 떨어져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고 하는군요. 후일 인터뷰에서 당시 그는 태양이 폭발한 거 아닌가 의심했었다고 하네요. 그 정도로 위력이 무시무시했다는 얘기겠죠.
그는 얼굴과 팔에 심한 화상을 입었고, 한 쪽 청력을 잃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습니다. 하지만 그의 천운 혹은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2. 나가사키로 돌아와 또 피폭
야마구치씨는 아비규환이 된 히로시마를 뒤로 하고,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고향 나가사키로 발길을 돌립니다. 가족이 있는 나가사키에 도착한 건 1945년 8월 8일 아침. 나가사키에 또 다른 원자폭탄(팻맨)이 떨어지기 하루 전이죠.
화상이 심한 얼굴을 붕대로 칭칭 동여 맨 야마구치씨는 9일 아침,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로 출근합니다. 출장 복귀 보고를 해야 했기 때문인데, 당시 상관은 폭탄 한 발이 도시 전체를 파괴했다는 걸 믿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상관에게 추가적으로 히로시마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하려는 순간, 다시 한 번 섬광이 번쩍였고, 그는 반사적으로 엎드렸다고 합니다. 그는 원폭의 섬광, 폭풍, 버섯구름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귀신이 아닌가 생각했었다고 하죠.
이번에도 폭심지에서 3km 떨어진 곳에서 피폭을 당했다는군요. 두 번이나 피폭 당한 것도 기막힌 우연인데, 두 번 다 3km 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었다는 게 섬뜩할 정도로 놀랍네요.
이번에는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지만 1차 피폭 당시 화상을 입은 자리가 노출되면서 몇 주 간 고열과 구토로 고생했다고 하네요. 야마구치 씨에게 히로시마에서 있었던 일을 들었던 그의 아내와 아이는 방공호로 대피해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하고요.
아무튼 야마구치씨는 2009년 93세에 위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피폭으로 인한 백내장, 급성 백혈병 등 후유증으로 꽤나 고생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