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7일 일본은 미국 태평양 함대가 주둔하고 있던 진주만을 공습합니다. 선전포고 없이 총 450대의 항공기를 실은 6척의 일본 항공모함이 하와이 근해에 접근해 무방비 상태의 미 함대에 선제타격을 가했죠. 이 공습으로 미국 전함 7척 가운데 5척이 격침되고, 200여대의 항공기가 파괴됐으며, 미군 2,334명과 민간인 103명이 사망했어요.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 전역은 충격에 휩싸였죠. 일본은 왜 선전포고도 없이 무리한 선제공격을 감행했을까요?
1. 자원 확보
당시 일본은 군수물자 부족에 직면해 있었어요. 특히 중일전쟁을 치르고 있던 일본에게 석유와 고무는 필수적인 전략자원이었지만, 미국의 제재로 수입이 모두 막혔죠.
일본의 구상은 이랬습니다. 진주만을 공격해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무력화한 뒤, 미국이 전열을 재정비하는 동안 석유와 고무가 풍부한 동남아시아를 차지해 전략자원을 확보할 생각이었죠.
2. 미국과의 대결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은 한 번은 치뤄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특히 미국이 일본의 동아시아 패권 의지를 꺾으려 경제적 제재를 가하자, 일본은 미국과의 대결을 불가피하게 여겼습니다. 어차피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유럽 전선이 정리된 후 미국이 태평양 전선에서 총력전을 펴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3. 일본 내부의 정치적 상황
당시 일본은 군국주의 세력이 강했습니다. 군국주의 세력은 미국과의 전쟁을 통해 일본의 국위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진주만 공습은 군국주의 세력의 작품이었죠.
4. 미국과의 협상 실패
애시당초 일본은 미국과 협상을 통해 자원 확보 문제를 해결하려 했어요. 하지만 미국은 일본의 요구를 거부했고, 협상은 결렬됐죠. 결국 미국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본 일본은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습으로 선제타격에 나섰고,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뒀습니다.
5. 결론
진주만 공습은 여러 가지 요인이 얽혀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그 당시 일본에게는 최선의 전략이었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많은 미국인들의 사상을 초래했고, 2차 세계대전 참전에 소극적이던 미국 여론을 호전적으로 바꿔 놓는 계기가 됐습니다.
승승장구하며 동아시아 패권을 손에 쥐었던 일본도 미국의 참전으로 어려움을 맞게 돼죠. 미드웨이 해전에서 참패를 하며 태평양 제해권을 내주었고, 수차례 본토 공습을 당하며 전쟁 초기 유리한 듯 보였던 전황도 점점 기울기 시작합니다.
결국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으며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