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항상 무리 속에 살았습니다. 그걸 즐겼죠. 학창시절에도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무리의 중심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즐겼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에서는 술자리에서 대부분의 사회생활이 이루어졌습니다. 대학에서도, 회사에서도. 그 때만 해도 뒷풀이 문화라는 게 있었으니까요.
술을 즐기고, 무리의 중심에서 관심 받는 걸 즐겼던 제가 술자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겠죠?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죠. 그런데 어느 순간, 그렇게 즐겁던 술자리가 식상해졌습니다. 불콰한 상태로 다음 날 기억도 못할 말들을 떠들어재끼는 게 시간낭비처럼 느껴졌거든요.
그 때부터 저는 스스로 무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그 시간에 책을 읽었죠.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성공한다는 말을 곱씹으면서요. 물론, 아직도 성공한 인생은 아닙니다만,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책을 읽고 있습니다. 권 수로 따지면 천 권은 족히 넘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 읽었으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만! 글쎄요, 꼭 그런 것만도 아니더라고요.
지금은 여정 자체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책 읽는 걸 즐기니깐요. 적어도 시간 낭비는 아닌 셈이죠. 또, 책의 내용이 구구절절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여지껏 읽었던 책의 내용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자양분이 된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까요.
빌드업이 쓸데없이 너무 길었네요. 여지껏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좋았던 책 한 권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없이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을 꼽겠습니다. 반복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한 번 읽었던 책을 웬만해서는 두 번 읽지 않는데요. 이 책은 때 되면 먹는 끼니처럼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벌써 세 번은 읽은 것 같네요. 책이 두껍지 않고 술술 익혀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기도 무난하고요.
행복의 기원은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 책 좀 파격적인데요.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막의 오아시스 '행복'이 삶의 목적이 아닌 생존을 위한 수단이랍니다. 좀 생뚱맞습니다.
저는 20대 때부터 행복에 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사실 행복에 관해 고민해 본 적이 없고요. 왜냐하면 불만이 별로 없었거든요. 학교 다녀오면 하고 싶은대로 다 할 수 있었고, 마음껏 친구들과 놀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취업을 준비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자, 행복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취직을 하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고민은 놓을 수 없었죠. 왜냐하면 인생에 불만이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듯이 그렇게 행복을 찾아 헤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는 행복을 찾아 헤매는 게 쓸데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죠. 왜냐하면 행복은 사막의 오아시스가 아니니까요.
서은국 교수는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이유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쾌감을 얻기 위함이라고 주장합니다. 음식을 먹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장려하기 위한 자연의 설계라는 겁니다. 이러한 쾌감은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활동을 지속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행복의 '강도'보다 '빈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도 강조합니다. 큰 기쁨을 한 번 느끼는 것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인간의 감정이 어떤 자극에도 쉽게 적응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행복을 위해서는 일상에서의 작은 즐거움을 자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이 책을 읽고 나면 결국 행복이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죠. 모두가 알고 있던 것을 저만 몰랐던 걸까요? 아무튼 저는 그랬습니다.
결국 행복은 인간이 생존하고 번식하는 데 필요한 진화론적인 도구일 뿐입니다. 인간이 밥을 먹거나 이성과 관계를 맺을 때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은, 이러한 행위들이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행복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그 어떤 거대 담론이라기보다는 그냥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도록 설계된 유인책과 같은거죠.
또 이 책은 행복이 객관적인 삶의 조건에 크게 좌우되지 않으며, 유전적인 특성, 특히 외향성과 관련이 깊다고 말합니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행복감을 잘 느끼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행복이 개인의 노력보다는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더 크게 결정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해지기 위한 노오력이 오히려 불행의 올가미에 걸려드는 바보짓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고, 사막의 오아시스를 더 이상 찾아나서지 않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오늘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결론을 맺을 때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행복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였다. 우선,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들이다. 이런 경험은 본질적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철학이 아닌 생물학적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 되는 생각을 자주 하라는 처방을 내리는 의사는 없다. 그러나 행복에 대한 지침들은 대부분 그렇다. “불행하다면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이다. 불행한 사람에게 생각을 바꾸라는 것은 손에 못이 박힌 사람에게 “아프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을 통해 바뀌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생각이다. 행복의 핵심인 고통과 쾌락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니다.
둘째, 행복에 대한 이해는 곧 인간이라는 동물이 왜 쾌감을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직결된다. 인간만큼 쾌감을 다양한 곳에서 느끼는 동물이 없다. 쇼팽과 셰익스피어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쾌감은 먹을 때와 섹스할 때, 더 넓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 진화의 여정에서 쾌감이라는 경험이 탄생한 이유 자체가 두 자원(생존과 번식)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현상은 한국인의 일상을 실시간 조사한 연구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현재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얼마나 즐거운지를 대학생, 직장인, 주부,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구재선, 서은국, 2011). 한국인이 하루 동안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두 가지로 나타났다. 먹을 때와 대화할 때.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행복의 기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