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폭정(?)이 시작된 가운데 유럽연합(EU)의 대응이 심상치 않은데요. 미국에 의존하던 안보정책에서 탈피해 자주 국방 기치를 내걸고, 국방비 확대를 천명했습니다. 냉전시대를 거치며 굳건했던 유럽과 미국의 대서양 안보동맹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있는 형국인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EU가 미국을 뜯어먹기 위해 창설된 기구라고 폄훼하기도 했죠.
오늘은 EU는 정확히 무엇이고, 그간 유럽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왔는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EU의 창설
EU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국가들 간 평화와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창설된 국제 기구입니다. 1951년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6개 국가가 참여해 석탄과 철강 산업을 공동 관리하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창설 했습니다. 이게 EU의 모태인데요. 전쟁의 주요 자원이었던 두 산업을 통합함으로써 유럽 내 전쟁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ECSC가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 확대되면서 유럽 내 경제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시작됐고요. 회원국 간 관세를 철폐하고, 단일 시장을 구축한다는 게 골자였죠.
1992년 체결된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기반해 1993년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는 EU가 출범했습니다. 유로화 도입(1999년), 동유럽 국가들의 가입 등으로 EU의 기반이 확대됐고요. EU는 평화, 안정, 경제성장을 목표로 출발했으며, 회원국 간 무역 장벽을 없애고 공통의 외교 정책을 추진하는 등 강력한 결속력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 때만 해도 그랬죠.
EU는 유럽을 이롭게 하는가?
유럽 국가들의 정치, 경제를 통합해 유럽 국가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EU가 정말 유럽을 이롭게 하는지는 그간 여러차례 의구심이 제기돼 왔죠.
유럽연합의 주요 경제권인 유로존은 단일 통화인 유로화(EUR)를 사용합니다. 유로존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독일은 수출 중심의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갖춘 나라로, 유로화 체제에서 큰 이득을 봤습니다. 유로화 가치는 유럽 경제 전체를 반영하기 때문에 독일 입장에서 보면 마르크화를 사용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통화 약세를 유지하기가 쉽습니다. 무역에서 많은 돈을 벌면 달러가 계속 유입돼 자국 통화는 강해지기 마련인데요. 구조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지속적인 무역 흑자가 가능해진 거죠.
독일의 수출품은 유로화 약세를 기반으로 국제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팔릴 수 있어 독일의 수출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강화된 반면,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남유럽 국가들(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경제 규모 대비 강한 유로화를 사용하면서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쓰기 어려워져 경기침체가 와도 경기 부양을 못 하게 됐고요. 평균의 함정이죠.
EU는 회원국들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GDP 대비 3% 이하의 재정 적자와 60% 이하의 국가 부채 비율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규제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도 확장 재정을 마음껏 사용할 수 없는 겁니다.
2010년 유럽 재정 위기가 왔을 때,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EU의 재정 지원을 받는 대신 복지 지출을 줄이고 공공 부문을 축소해야 했습니다. 이는 단기적으로 국가 재정을 안정시켰지만, 실업률 상승과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EU가 초래한 부작용
EU는 경제적 통합을 통해 균형 발전을 도모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에 가깝습니다. 경제 강국인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는 무역 흑자를 통해 부를 축적한 반면, 남유럽 및 동유럽 국가는 무역 적자와 경제 침체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 게 그 이유입니다.
EU의 통합 정책에 반대하는 약소국가들의 반발이 커지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EU 탈퇴론이나 반(反)EU 정서가 강해졌습니다. EU가 요구하는 난민 수용 정책, 기후 변화 대응, 노동 규제 등이 각 국가의 현실과 맞지 않아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경우도 부쩍 늘었고요.
2016년 세계를 놀라게 한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는 EU의 규제와 이민 정책에 대한 불만이 큰 원인이었고요.
EU의 엄격한 규제가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첨단 산업분야에서 복잡한 승인 절차로 미국·중국에 비해 혁신 속도가 느리다는 게 중론입니다.
대서양 동맹 균열은 EU를 각성할까?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EU를 각성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가깝게 지내면서 유럽연합은 미국을 뜯어내기 위해 만들어졌다라고 하는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을 거치며 굳건했던 대서양 동맹에 균열을 내고 있는 상황이죠.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은 EU가 미국 상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등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매겨질 상호관세의 가장 큰 피해는 EU가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고요. 트럼프는 또 대서양 동맹을 상징하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 미국이 과도한 방위비를 부담하고 있으며, EU 국가들은 미국의 안보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죠.
이에 유럽 각국은 GDP 2% 수준에 머물러 있던 방위비를 대폭 늘려 자주 국방에 나설 것으로 보이고요.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럽의 방위동맹을 구축할 때라며 유럽이 과거 평균 GDP의 3% 이상 지출했던 국방비를 절반 이하로 줄이면서 평화 배당금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안보 적자'를 내고 있었을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환상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죠. 유럽이 대서양 안보 동맹의 균열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EU 각국에 재정준칙 예외조항 발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방비를 증액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재정준칙 예외조항을 활용하면 EU 각국은 규정 위반없이 향후 4년간 국방비를 약 1000조원까지 증액할 수 있다고 하니까요. 이렇게 되면 현재 GDP의 1.99% 수준인 EU 국가들의 평균 국방비가 3.5%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EU집행위는 재무장 계획과 별개로 오는 19일 추가적인 재정 동원 등 EU 수준에서 안보 대비태세 강화를 위한 제안을 망라한 '국방백서'도 발표할 예정입니다. 트럼프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EU의 결속을 더 단단하게 할 지 아니면 통합을 느슨하게 해 각자도생으로 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그간 70년 동안 인류는 전에 없던 평화의 시간을 보냈는데요. 앞으로 '당연했던' 평화가 더는 당연하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오늘은 EU의 태생 배경과, EU가 정말 유럽을 이롭게 하는지 한 번 알아봤는데요. EU가 좋은지 나쁜지와는 별개로 하루가 멀다하고 속속 변하는 국제정세에서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요. 앞으로 EU의 움직임에도 관심을 가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