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이제 막 한 달이 조금 넘었군요. 이제 막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엄청난 속도로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전 세계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죠.
특히 관세 겁박에 가려져 있지만, 외교적 노선 변화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인 것 같은데요.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은 점점 고립주의로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트럼프 1기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애초에 고립주의를 천명한 나라였죠. 그러다가 1915년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미국 상선 루시타니아호가 침몰하자 1917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후 약 70년간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세계의 ‘맏형’ 혹은 ‘경찰’ 노릇을 해 왔습니다. 우리는 그간 미국의 비호(?) 아래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했던 긴 평화의 시대를 살았죠. 그러나 이제 미국이 외교 노선을 변경하기 위해 깜빡이를 켰습니다.
미국의 고립주의
고립주의는 국제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외교 방침입니다. 지지든지 볶든지 말든지 너희끼리 알아서 하라는 거죠.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그랬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고별사에도 이런 내용이 녹아있습니다. 유럽 국가들과의 정치적 관계를 피하고, 중립을 유지할 것을 강조했더랬죠. 그러나 1, 2차 세계대전 참전 이후 미국 고립주의는 희미해졌습니다.
다시 고개 든 고립주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백악관에 재입성한 트럼프 대통령은 희미해졌던 고립주의를 강렬하게 덧칠하는 중입니다. 최근 미국 공화당은 국제연합(UN) 탈퇴를 추진하는 법안을 발의했죠. 미국은 앞서 세계보건기구(WHO)를 탈퇴하기도 했고요. UN마저 탈퇴한다면 다자간 협정을 깨는 상징적인 조처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미국의 고립주의를 더욱 가속화하겠죠.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간 협정보다는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하죠. 동맹국들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세계를 지키는 데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동맹국들에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면서 그간 전 세계 안보에서 통용되던 미국의 역할을 재설정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더 이상 ‘안보’라는 명분으로 호구 잡히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조금은 다른 트럼프의 고립주의
트럼프 시대 미국의 고립주의는 조금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 질서와 국내 상황에 대한 철저한 손익계산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대외정책을 지향하고 있는데,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선별적인 개입과 고립 정책을 취했던 전통적인 고립주의와는 조금은 다른 방식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핵심 이익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만, 미국의 핵심이익과 동떨어진 분야에서는 과감하게 발을 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은 다자간 협정보다는 양자 관계를 중시하고,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시대 미국의 고립주의 성향은 세계 질서의 불안정, 군비 경쟁 가속화, 국제 협력 저하 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각자도생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요. 국제 질서에서 약화한 미국의 리더십은 아마도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들이 메우려고 할테죠.
어느 학자의 말마따나 '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군요. 정치 소용돌이 속에 둘로 나뉜 대한민국이 이러한 위기를 얼마나 슬기롭게 돌파해 나갈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혼란스러운 정국이 하루 빨리 수습돼 급변하는 국제질서에서도 휘둘리지 않고 버텨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